📑 목차
서론
마을이 통째로 이주하며 사라진 지신밟기 축제 기록에 보면 예전 농촌에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집집마다 신명을 울리며 찾아오는 풍물패가 있었다. 그들은 꽹과리를 울리며 마당으로 들어와 지신을 밟고 복을 비는 의식을 올렸다. 이 행사를 사람들은 지신밟기라 불렀다. 지신밟기는 마을의 단합을 다지고,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공동체 축제였다. 하지만 개발과 수몰, 도시 이주로 마을이 사라지면서 지신밟기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소리의 기억뿐이다.

1. 지신밟기의 유래와 의미
지신밟기는 땅의 신(地神)을 밟으며 복을 기원하는 의례다. 사람들은 땅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기 위해서는 지신을 달래야 한다고 믿었다.
이 풍습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졌으며, 주로 정월 대보름에 마을 풍물패가 각 집을 돌며 행했다. 풍물패는 마당에 들어서면 복 들어온다! 외치며 장단을 울렸다. 그 행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새해의 첫걸음을 함께 내딛는 의식이었다.
2. 의식의 절차와 풍경
지신밟기는 일정한 절차를 따랐다. 풍물패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행렬을 이루었다. 앞에는 깃발이 서고, 그 뒤로 꽹과리·장구·북·징이 이어졌다.
집 앞에 도착하면 풍물패는 마당을 세 바퀴 돌며 장단을 울리고, 상쇠가 지신 밟으러 왔소!를 외쳤다. 집주인은 문을 열고 쌀이나 술, 돈을 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풍물패는 그 자리에서 축원가를 불렀다.
이 집에는 복이 들고, 재물은 들어오고, 병마는 나가라!
그 소리에 사람들은 웃었고, 아이들은 풍물꾼의 상모를 따라 돌았다. 지신밟기의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한 해의 운명을 다짐하는 주문이었다.
3. 마을이 통째로 이주하며 사라진 지신밟기의 사회적 기능
지신밟기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사회적 장치였다.
풍물패는 단순한 연희 집단이 아니라, 마을의 공식 사절단이었다.
그들은 신년의 평안을 빌며 모든 집을 방문했고,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쌀을 나누어주고, 어려운 집에는 쌀독을 채워주는 풍습도 있었다.
지신밟기는 단순히 복을 비는 행사라기보다 서로 돌보는 공동체의 윤리가 담긴 행위였다.
그날 하루는 마을의 모든 경계가 사라졌고, 웃음소리와 북소리가 온 동네를 덮었다.
4. 마을 이주와 전통의 단절
하지만 산업화와 개발은 이 오래된 풍습을 무너뜨렸다.
1970~80년대 수몰 지역 이주 정책으로 인해 많은 농촌 마을이 사라졌다.
댐이 세워지고 도로가 놓이면서 마을은 통째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다.
새로운 이주지는 구조가 달랐고, 사람들은 흩어져 살았다.
풍물패가 마을을 돌던 길은 사라졌고, 마당이 있던 집은 아파트로 바뀌었다.
지신밟기의 소리는 그 길을 잃고 말았다.
어른들은 이사 오고 나서 풍물소리를 못 들은 게 제일 허전하다고 말했다.
지신밟기가 사라진 것은 단순한 풍속의 소멸이 아니라, 공동체 기억의 단절이었다.
5. 지신밟기의 기억 – 마당, 소리, 사람
지신밟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마당이었다.
마당은 마을의 중심이자 공동체의 광장이었다.
풍물패는 그 공간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노래를 부르며 마을의 경계를 허물었다.
마당이 사라지자 지신밟기도 사라졌다.
지금의 도시 주택은 담장 안쪽이 좁고, 사람의 발소리보다 자동차 소리가 크다.
그 속에서는 장단이 설 자리가 없다.
지신밟기가 남긴 것은 소리의 기억, 사람의 손맛, 그리고 함께 웃던 표정이다.
그 기억이야말로 잃어버린 관계의 원형이다.
6. 현대의 복원 시도 – 문화로 다시 피어나는 지신밟기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지신밟기를 문화행사로 되살리고 있다.
전북 완주, 충남 예산, 경북 의성 등지에서는 정월 대보름마다 주민과 학생이 함께 지신밟기 행렬을 만든다.
풍물패는 마을을 돌며 노래하고, 참가자들은 직접 장구를 배우기도 한다.
이 행사는 관광용이 아니라, 관계 복원 프로젝트의 성격을 가진다.
특히 수몰민 후손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지신밟기를 복원하는 사례도 있다.
그들은 지신밟기는 우리가 마을이었던 시절의 증거라고 말한다.
7. 사라진 지신밟기 축제 기록의 문화적 가치
지신밟기는 단순히 옛 풍속이 아니라, 한국형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첫째, 방문이라는 행위는 관계 회복의 실천이었다.
둘째, 소리는 마음의 문을 여는 매개였다.
셋째, 밟기라는 행위는 땅과 인간의 연결을 상징했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지신밟기는, 공동체적 예술의 완성형이었다.
그 속에는 노동, 신앙, 예술, 사회의식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8. 지신밟기의 현대적 재해석
오늘날 지신밟기는 예술교육, 사회복지, 환경운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전통문화 수업으로, 도시에서는 마을축제로, 복지기관에서는 소통 프로그램으로 활용된다.
사람들은 이 의식을 통해 함께 걷고, 함께 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지신밟기가 단지 옛날의 풍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회복하는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9. 지신밟기의 소리와 몸짓이 남긴 철학
지신밟기의 장단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 소리는 인간의 몸이 땅과 소통하던 방식이었다.
풍물패의 발이 땅을 밟을 때마다 흙이 진동하고, 그 진동은 사람의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 울림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대지의 일부임을 느꼈다.
지신밟기의 장단은 땅에 대한 감사이자, 삶의 리듬을 되찾는 의식의 박자였다.
예전의 어른들은 풍물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순한 흥이 아니라, 몸이 기억한 공동체의 리듬 때문이었다.
그 리듬이 이어지는 한, 마을은 단단했다.
그러나 도시로 이주한 후 사람들은 흙을 밟지 못했고, 발의 리듬은 시멘트 바닥에서 끊겼다.
그 단절이 바로 관계의 단절이었다.
10. 지신밟기의 교육적·사회적 가치
현대 사회에서 지신밟기를 다시 배우는 일은 단순한 전통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공감의 훈련이자, 공동체 감수성을 회복하는 교육 행위다.
아이들은 지신밟기를 통해 나의 발자국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배운다.
함께 북을 치며 걷는 행위는 타인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 된다.
또한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지신밟기를 소리 치유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혼자 살아가는 노인들이 장구를 치고, 마당 대신 복도에서 발을 맞출 때
그 소리는 다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지신밟기의 본질은 결국 혼자 걷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그것이 이 행사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다.
11.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지신밟기
도시는 변했고, 마을의 형태도 달라졌지만, 지신밟기의 정신은 디지털 공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온라인 마을 커뮤니티, SNS 모임, 협동조합의 연대 활동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함께 걷는 감각을 만들고 있다.
누군가는 마을 밴드로 모이고, 누군가는 아파트 동대표로 만나며,
각자의 공간에서 지신밟기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지신밟기가 과거에 땅을 밟는 행위였다면,
지금의 지신밟기는 관계를 밟고, 신뢰를 다지는 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땅이 디지털이 되었을 뿐, 인간의 본능은 여전히 함께 울리는 소리를 갈망한다.
12. 다시 땅을 밟는 마음으로
마을이 통째로 이주하며 사라진 지신밟기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있다.
그 축제는 사실상 공동체의 헌법이었다. 사람들이 함께 울리고, 함께 걷고, 함께 웃을 때, 사회는 비로소 따뜻해진다.
오늘의 사회가 다시 지신밟기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다운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 된다.
땅을 밟는다는 것은 곧 현재를 느끼는 일이며,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다.
지신밟기의 장단은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울림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지신밟기의 장단은 멈췄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집집마다 풍물패를 맞이하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그 북소리를 기억한다.
그 소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신밟기가 사라진 세상은 관계가 메마른 세상이다.
우리가 그 축제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마음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지신밟기는 결국 인간이 땅과 사람에게 인사하던 문화였다. 그 인사를 다시 배우는 일이, 지금의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땅을 밟는 그 발걸음 속에는 인간의 온기와, 잊혀진 마을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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