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사라진 마을 축제와 줄다리기 전통놀이
- 사라진 공동체의 가치
- 정월대보름 줄다리기
- 풍년을 비는 농촌의 마음
- 우리가 다시 이어야 할 연결의 끈
사라진 마을 축제, 기억 속의 마지막 줄다리기는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에는 매년 봄이면 줄다리기 축제가 열렸다. 논이 파릇해지기 시작하면 마을 어르신들은 넓은 공터 한가운데서 굵은 새끼줄을 꼬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들판에서 가져온 볏짚을 말리며 서로 손에 흙을 묻혀가며 웃었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줄을 잡고 따라 하며 흉내를 냈다. 줄 하나를 만드는 데만 이틀이 넘게 걸렸고, 마을 전체가 합심해 만들었다. 줄다리기의 날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마을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호흡하던 시간이었다.
행사 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북소리와 함께 함성을 질렀다. 남쪽 줄과 북쪽 줄로 나뉜 사람들은 서로의 힘을 겨루며,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줄을 잡은 손에는 흙이 묻었지만, 그 흙이 곧 마을의 냄새이자 삶의 흔적이었다. 그날의 공기에는 흙과 볏짚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이 섞여 있었다. 누구도 그것을 ‘행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삶의 일부였다.
줄다리기 전통놀이, 농촌 공동체 문화의 상징
줄다리기는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라 농사철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긴 쪽 마을이 풍년을 맞는다.라는 말을 믿었고 모두가 정성을 다해 줄을 잡았다. 하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상대 마을을 이기려 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땀을 흘렸다는 사실이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그 줄을 잘라 나누어 각자 집으로 가져갔다. 집 문 앞이나 창고에 걸어두면 악귀를 막고 풍요를 불러온다고 믿었다. 그때의 줄다리기는 공동체의 상징이자 신앙의 표현이었다. 현대 사회의 축제가 단순한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과 달리, 옛날의 줄다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묶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매개체였다.

정월대보름 줄다리기, 풍년을 기원하던 마을 단합 행사
정월대보름에 열리던 줄다리기는 마을 단합의 상징이었다.
남녀노소가 함께 줄을 꼬고, 서로 다른 집안이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줄다리기를 통해 사람들은 같이 산다는 감각을 체험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하나의 줄을 잡고 같은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일,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의미였다.
이 축제는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농촌의 협동과 신앙이 결합된 문화행사였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끈이 바로 그 줄에 담겨 있었다.
사라진 마을 축제의 마지막 줄다리기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줄다리기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그해는 이상하게도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고, 남은 이들은 허리가 굽은 어르신뿐이었다. 줄을 꼬는 손길도 예전 같지 않았다. 행사 당일 북소리는 울렸지만 그 울림이 예전만큼 크지 않았다.
마을 어귀의 공터에는 먼지가 가라앉지 않았고, 아이들의 함성도 작았다. 줄다리기가 끝난 뒤 어르신 한 분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이게 마지막이겠지.
그 말은 마치 마을의 시간이 멈추는 순간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줄다리기는 열리지 않았다. 다음 해부터는 그 넓은 공터에 작은 마을 주차장이 들어섰다. 축제 대신 차량이 서 있었고, 사람들 대신 기계가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예전에 여기서 줄다리기 했었지.라며 웃으며 말한다.
추억이 사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것뿐이었다.
사라진 축제가 남긴 것과 전통놀이 복원의 필요성
줄다리기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줄다리기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무형의 교과서였다. 경쟁보다는 협동이, 승패보다는 웃음이 중요했던 그 놀이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단어를 체험으로 배웠다.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관계를 맺는 시대지만, 그때는 손의 온기와 시선 하나로도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줄다리기의 밧줄이 끊어진 자리에 생긴 것은 도로와 건물일지 몰라도, 그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줄이 이어져 있다. 그 줄은 흙냄새와 함께 사람의 정을 묶고, 서로의 기억을 붙잡아둔다. 이제는 줄다리기를 단순한 전통놀이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마을이 하나였던 시대의 상징이자 인간적 연결의 은유로서 되살릴 필요가 있다.
결론 – 다시 이어야 할 공동체의 끈
사라진 마을 축제의 이야기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 속에는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함께 살아가던 시대의 온기가 담겨 있다.
마지막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서로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었다.
줄 하나를 잡고 당기는 동안,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숨결을 느꼈고, 그 끈은 곧 마음의 연결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편리함 속에 살지만,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웃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축제 대신 개인의 시간을 소비하는 시대 속에서,
줄다리기가 남긴 공동체의 정신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누군가가 이제 이게 마지막이겠지라고 말했던 그날 이후,
우리의 사회는 점점 더 조용해지고, 서로의 소식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진정한 축제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날의 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누군가 다시 줄을 꼬기 시작한다면,
그건 단지 옛 문화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밧줄을 꼬는 손끝에는 정성과 기다림이 담기고, 함께 당기는 그 순간에는 믿음과 웃음이 깃든다.
줄다리기의 줄은 단지 새끼줄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선이었다.
그 선이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잊혀진 마을의 온기를 되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다시 잡아야 할 줄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과 연대의 끈이다. 작고 낡은 마을 축제의 기억이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결국 함께라는 말 하나다.
그 함께라는 단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능이며,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될 가치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라진 줄을 다시 손에 쥐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 옛날처럼 웃음을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줄다리기의 흙냄새, 북소리, 함성은 사라졌지만,
그 모든 것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그 줄을 잡을 때,
그것이 바로 진짜 공동체의 부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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