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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도랑배 띄우기 – 흐름을 따라가던 작은 나뭇배의 하루

📑 목차

    비가 오래 내리던 날이면 마을의 도랑은 평소보다 조금 높아진 물결로 가득 찼다.
    빗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우는 동안, 도랑을 따라 흐르는 물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평소에는 잔잔하게 흐르던 물길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조금 더 활기를 띠고, 물빛도 평상시보다 짙어져 있었다. 그날의 물결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어딘가로 향하려는 의지를 가진 듯한 모습으로 이어졌다.

     

    도랑배를 띄우는 풍습은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는 작은 풍경이었다.
    비 내리는 물길은 배가 가볍게 밀려 나가기에 적당한 깊이를 만들어 주었고, 어둑해진 하늘 아래에서 물결이 만들어내는 결이 도랑배의 움직임을 인도했다. 배는 크지 않았다. 나뭇가지 몇 개를 얇게 묶어 만든 작은 형태였지만, 물 위에 올려놓는 순간 도랑은 그 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길을 내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의 도랑은 평소보다 색이 더 진해 보였다.

     

    흙이 물결에 섞여 들어가면서 땅의 온기가 그대로 물길에 실려 나왔고, 비와 섞인 냄새는 도랑 양옆에 퍼져 일시적인 안정을 만들었다. 물결이 배의 바닥을 받쳐 올리는 느낌은 조용했지만 확실하게 존재했다. 배는 물살에 따라 어느 쪽으로 흐를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불규칙함이 오히려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도랑의 가장자리는 비로 촉촉해진 풀들이 늘어서 있었다.

    비 오는 날 도랑배 띄우기

    풀이 물기를 가득 머금고 고개를 숙이듯 늘어진 모습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려주는 작은 신호처럼 보였다. 물결이 풀 사이로 스며들며 만들어낸 작은 소리는 비 내리는 소리와 겹쳐 들판 전체를 하나의 장면처럼 연결했다. 그 소리는 규칙도 없고 특별히 강조되는 부분도 없지만, 듣고 있다 보면 자연이 하루의 리듬을 스스로 맞추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도랑배는 물결을 따라 천천히 흐르다가 어떤 순간에는 속도를 조금 높이기도 했다.
    비가 잠시 세게 내릴 때면 물살도 같이 강해져 배가 빠르게 움직였고, 빗줄기가 약해지는 시간대가 오면 배의 속도도 이내 느려졌다.

     

    이 변화를 관찰하고 있으면 자연의 흐름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랑배는 그 변화 속에서 물길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도랑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물의 소리는 조금씩 달라졌다.
    물이 좁아진 공간을 지나며 내는 소리는 얇아지고, 깊은 물을 지날 때는 묵직하게 울렸다. 이 소리의 변화는 배의 움직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물결이 넓은 구간에서는 배가 옅게 흔들렸고, 좁은 곳을 지날 때면 물살이 정해주는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비 오는 날만 경험할 수 있는 이 흐름은 들판에 스며든 습기와 함께 묘한 안정을 만들어냈다.

    비가 그치기 시작하면 도랑배의 움직임도 점점 잦아들었다.
    물살이 약해지면 배는 어느 순간 조용히 멈춰 서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더 이상 강한 물결이 밀어주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것이다. 배가 멈추는 모습은 하루의 변화를 알려주는 자연의 작은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가 처음 내릴 때부터 그칠 때까지 도랑의 움직임은 단 하나도 같은 순간이 없었다.

    비 오는 날 도랑배를 띄우는 풍경은
    어떤 특별한 행사나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비와 물, 흙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기운을 따라가는 순간이었고, 흐름에 몸을 맡기듯 바라보는 것 자체가 그날의 의식을 이루었다. 물결 속에서 흔들리다가 멈춰 서는 작은 나뭇조각 하나에도 자연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난 뒤 도랑의 물빛은 다시 평소의 색으로 돌아갔다.
    흙 냄새도 조금씩 사라지고, 물기는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 도랑배를 띄우며 바라보았던 그 흐름의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길이 어떻게 이어지고, 비가 어느 순간 더 강해지고, 배가 어느 방향으로 흔들렸는지까지 모두 하나의 기록처럼 남는다.

    도랑배가 떠내려간 물길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 순간의 흐름은 도랑과 땅, 물안개와 비 사이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