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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공기는 밤과 낮 사이의 경계처럼 고요했다.
아직 햇빛이 들지 않은 시간이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머지않아 동쪽 하늘이 밝아올 것이라는 기척이 아주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큰 우물은 이 시간대에 가장 깊은 고요를 품고 있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물길을 닦는 일은 오래된 풍습처럼 이어졌다.
우물가로 가는 길은 새벽 이슬로 촉촉했다.
짧은 발자국마다 흙의 온기가 느껴졌고
짙은 새벽 안개가 우물 주변을 살며시 감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우물은 그저 물을 길어 올리는 장소가 아니라
하루의 첫 기운을 깨우는 장소처럼 여겨졌다.

우물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가까운 곳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 소리였다.
밤사이 생긴 안개의 물기가 우물가 돌담으로 스며들며
새벽의 정적과 맞물려 잔잔한 소리를 만들었다.
우물 앞에 서면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들었고
그 냉기 속에서 하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새벽 물길 닦기는 서두르는 일이 아니었다.
먼저 우물 주변에 떨어진 낙엽과 마른 풀을 천천히 치웠다.
밤새 바람을 타고 이곳에 모인 가벼운 잎들이
우물 입구를 따라 얇게 쌓여 있었고
작은 비질만으로도 우물가는 금세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 작업은 단순해 보였지만 우물의 첫 숨을 깨우는 일처럼 여겨졌다.
돌담 위에 고인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아낼 때
돌 표면은 밤의 차가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차가움은 새벽이라는 시간의 정서를 보여주는 듯했다.
물기를 닦고 나면 돌 표면이 조금씩 밝아졌고
우물가는 날이 밝아오는 흐름에 맞춰
조금씩 표정을 바꾸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빛은 아직 깊은 색을 띠고 있었다.
새벽의 빛이 완전히 닿지 않은 시간대라 물결 하나하나가 선명했다.
바람이 불면 잔잔한 흔들림이 생겼고
그 움직임은 우물가에 새롭게 시작될 하루를 암시했다.
물길을 닦는 이 시간은 우물도 하루를 준비하는 순간처럼 보였다.
우물가에 놓인 나무 두레박은 밤사이 이슬을 머금어
겉면이 조금 축축했다.
두레박을 들어 올릴 때 손바닥에 닿는 촉감은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은 묘하게 생기를 품고 있었다.
물 한 바가지를 퍼 올리면
우물 속의 물결이 순간적으로 흔들렸고
그 떨림이 나무벽을 따라 고요하게 퍼졌다.
물이 퍼 올려진 뒤 우물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물길을 정리하는 일은
물 흐름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흘러넘친 물이 작은 물길로 이어지도록 돌과 흙을 살짝 다듬고
물이 고이지 않도록 길을 정리했다.
흙은 아직 새벽의 수분을 머금고 있었고
발끝으로 밟으면 조용한 감촉을 남겼다.
이 일은 물이 마을로 흘러가는 첫 흐름을 잡아주는 작업이었다.
우물가 주변에서 새벽을 깨우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물 흐르는 소리, 돌을 닦는 작은 마찰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가느다란 울음뿐이었다.
이 소리들은 무질서하게 섞이지 않고
새벽이라는 시간대에 알맞은 속도로 흘렀다.
우물가에서 이어지는 움직임은 모든 것이 느리고 단정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면
우물가 주변의 색도 서서히 변했다.
돌담은 더 밝은 회색을 띠고
우물 속 물빛도 이전보다 옅어졌다.
이때 물길을 한 번 더 살펴
물이 잘 퍼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작은 물길 하나에도
마을의 하루가 묻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을 다루는 일은 항상 조심스러웠다.
우물은 마을 전체가 나누어 쓰는 귀한 자원이었고
그만큼 우물가를 정갈하게 유지하는 풍습은 매우 중요했다.
새벽 물길 닦기라는 이 조용한 의식은
우물을 아끼고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처럼 보였다.
우물이 맑게 유지될수록 마을의 하루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우물가를 떠날 즈음이면
햇빛이 담장 위로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빛이 돌담과 우물 가장자리에 닿을 때
새벽의 차가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우물가에서 보내던 조용한 시간은
하루의 시작을 깨끗하게 열어주는 의식이었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소중한 풍경이었다.
이 풍습은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새벽 공기 속에서 흙과 물, 돌과 바람이 만나던 순간들은
오래된 공동체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물가를 돌보던 새벽의 시간은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을이 품고 있던 조용한 질서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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