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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 널빤지 위에서 굴리는 들깨 털기 풍경

📑 목차

     

     

    가을 들판에 해가 조금씩 내려앉는 시간대가 되면, 마을 곳곳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볕이 남아 있을 때 얼른 털어야 하는 들깨 작업은 매년 이맘때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부엌이나 마당보다 널찍한 마당 한가운데가 그 일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자리였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면 들깨 향이 은근히 떠올랐고, 그 향은 가을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조용한 신호처럼 다가왔다.

     

    들깨를 털기 전에 먼저 널빤지를 꺼내 마당에 가지런히 놓았다.
    나무결이 오래되어 조금 거칠었지만, 그 거친 표면이야말로 들깨를 굴려낼 때 가장 적당했다.

     

    널빤지를 햇빛 방향에 맞춰 두면 남은 볕이 나무 위로 부드럽게 퍼졌고, 그 아래서 들깨 작업은 천천히 준비되었다.

    가을 저녁 널빤지 위에서 굴리는 들깨 털기 풍경

    들깨 줄기를 한 아름 모아 널빤지 위에 올리면, 줄기 끝에서 잔향이 은근하게 퍼졌다.
    줄기를 손으로 털어내면 작은 씨앗들이 나무판 위로 굴러 떨어졌고, 그 소리는 작고 가벼웠다.

    하지만 그 가벼운 소리 속에는 한 해 동안 들판이 품었던 시간을 모두 담고 있는 듯했다.

     

    든든하게 마른 줄기를 흔들면 씨앗이 빠르게 떨어지기도 했고,
    줄기의 결이 촘촘한 부분은 여러 번 흔들어야 비로소 씨앗이 고르게 쏟아졌다.
    씨앗이 떨어질 때 널빤지 표면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가을 저녁의 정적 속에서 은근하게 울려 퍼졌다.

     

    줄기에서 씨앗을 털어낸 뒤에는 널빤지 위로 손바닥을 가볍게 쓸어 잔가지를 털어냈다.
    나무판 표면을 스치는 손끝에 가을 햇빛이 고요하게 반사되었고, 씨앗은 작은 점처럼 고르게 모여들었다.
    씨앗과 껍질이 섞여 있어도
    이후의 작업이 그 흐름을 자연스레 정리해 주었다.

     

    들깨는 널빤지 한쪽에 모아두고,
    판을 살짝 들어 기울이면 가벼운 껍질부터 먼저 흘러내렸다.
    무게가 있는 씨앗은 뒤에 고였다.
    이 단순한 동작 하나가 들깨 작업의 절반이었다.
    가벼운 것은 떠나고, 묵직한 것은 남는 이 흐름은
    들판에서 배운 자연스러운 원리이기도 했다.

     

    조금 더 정교하게 털어내려면
    손으로 씨앗을 들어 천천히 위에서 다시 떨어뜨렸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는 저녁 시간이면
    바람이 껍질만 살짝 밀어내고 씨앗은 널빤지 위로 다시 내려앉았다.
    바람과 사람의 손이 함께 만드는 분리 작업은
    가을 저녁에만 느낄 수 있는 리듬을 가졌다.

     

    해가 서서히 기울면 마당의 색도 달라졌다.
    늘어지는 그림자 아래에서 들깨는 빛을 받아 은근하게 윤이 났고,
    작은 씨앗 하나하나가 부드러운 황금빛을 품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널빤지 주변에 놓였던 말린 잎들이 가볍게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가을 저녁의 고요함을 더 깊게 만들어주었다.

     

    작업이 절반쯤 지나면 널빤지 위의 씨앗 양이 늘어나
    손으로 한 번 더 고르게 펴야 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씨앗이 조금씩 흩어졌다 모이며
    특유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 촉감은 들깨 작업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가을의 작은 손맛 같은 것이었다.

     

    들깨를 다 턴 뒤에는
    널빤지를 조심히 들어 그 아래 묵은 흙을 털어냈다.
    나무판은 가을 동안 여러 번 사용되어 색이 달아 있었고,
    그 결은 오래된 장인의 도구처럼 자연스레 만들어진 형상이었다.
    널빤지의 흔적 자체가
    계절이 지나가는 기록 같았다.

     

    씨앗을 바구니에 쏟아 넣는 소리가 마당에 울리면
    하루 작업은 거의 끝난 것이었다.
    바구니 속에 모인 들깨는 검고 단단한 결을 지니고 있었고,
    곡식 하나가 들판에서 마당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저녁 노을이 마당을 붉게 감싸면
    들깨 털던 자리도 자연스레 조용해졌다.
    널빤지는 다시 벽에 세워두고
    바구니는 부엌의 시원한 그늘로 옮겼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오늘 털어낸 들깨의 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실어 보냈다.

     

    가을 저녁 널빤지 위에서 이어지던 들깨 털기 풍경은
    요란하지 않지만 계절의 결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무게, 바람이 가져가는 껍질,
    널빤지 위에 남는 작은 흔적들까지 모두
    한 해 농사의 흐름을 조용히 담아내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