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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한창인 여름 낮,
바람도 숨을 죽인 듯 고요한 논가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하늘은 너무 맑아서 구름조차 드물었고,
그 아래 반짝이는 논물은 작은 세상이 되었다.
논두렁에 맨발로 선 아이들은
뜨거운 햇볕을 이기기 위해 물을 찾았다.
고개를 들면 햇살에 눈이 부시고
고개를 숙이면 논물에 비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서 물장구는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작은 손바닥으로 물을 퍼올려 뿌리면
햇빛에 반사된 물방울이 눈앞에서 반짝였다.
바지를 걷어붙인 채 뛰어다니는 발자국 사이로
물고기 한 마리가 스치듯 지나가기도 했다.
놀라는 아이들은 깔깔 웃었고,
그 웃음은 여름의 무더위를 순식간에 잊게 했다.
논가의 물은 깊지 않아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놀이터였다.
다만 미끄러운 진흙길과
논두렁 가장자리는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제약마저도
아이들에겐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논가에서 뛰던 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에도
아이는 배꼽 빠지게 웃었다.
진흙이 묻은 바지를 보며
누군가는 괜찮다며 흙을 털었고,
또 누군가는 그걸 장난감 삼아
진흙 탑을 쌓았다.
햇살은 점점 더 뜨거워졌지만
논물은 늘 같은 온도로 아이들을 반겼다.
그 속에 손을 담그면
얼얼한 시원함이 전해졌고,
그 시원함이 발끝으로 올라올 때
온몸의 열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물장구는 단순하지만 지치지 않는 놀이였다.
물살을 일으키고
작은 바가지로 서로를 물총 삼아 쏘며
하루의 절반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누가 더 멀리 물을 튀기나
누가 먼저 물고기를 잡나
이야기 없는 경쟁도 곧잘 벌어졌다.
종종 옆집 어른이 수건을 들고 나타나
"해는 피해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금세 다시 물로 뛰어들었다.
그만큼 물과 함께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웠고 귀했다.
놀면서도 논물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언가 깊은 여유가 담긴 듯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 가장자리에는
아이들이 만든 진흙 댐이 생기기도 했다.
논물을 막아보겠다는 작은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실패마저 즐거움이 되었다.
비뚤어진 댐이 무너질 때
“아까워!” 하는 외침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의지는 가득했다.
어떤 날은 물장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논가에서 잡은 올챙이를 보여주고
누군가는 풀숲에서 발견한 개구리를 자랑했다.
작은 바구니에 담긴 생명들은
잠시 감탄을 받고 다시 물로 돌아갔다.
그 순환도 아이들은 배웠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면
멀리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으러 와라!”
그 소리에 미련을 남긴 채
아이들은 논가를 뒤로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뛰고,
한 번 더 웃으며 물을 튀긴 뒤에야
마지못해 발을 뺐다.
젖은 바지와 옷자락,
흙이 잔뜩 묻은 손과 발,
그리고 얼굴 가득한 미소는
그날의 놀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증명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걸음은
늦은 오후 다시 돌아올 것을 예고하듯
가볍고도 설렜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논가에서 이어지던 그 시절의 물놀이는
여름의 대표적인 기억 중 하나였다.
에어컨도, 수영장도 없던 시절
자연이 주는 시원함과 자유는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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