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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날 부녀회 풍경

📑 목차

    김장날이 다가오면 마당 전체에 겨울의 기운이 퍼졌다.
    기온은 차갑지만 공기에는 특유의 생동감이 있었다.
    배추를 절이는 물소리, 김장 항아리에 스며드는 냄새, 바람이 가져오는 겨울의 냉기까지 그날의 풍경은 늘 특별했다.

    배추는 전날부터 소금물에 천천히 잠겨 있었다.
    소금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색을 띠었고, 절여지는 배추는 잎사귀마다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배추를 꺼낼 때마다 차가운 물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며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절여진 배추를 하나하나 펼치면 겨울 햇빛이 잎 사이로 스며들었다.
    햇빛은 짧았지만 그 따스함은 배추의 결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배추를 펼치는 과정 자체가 오래된 겨울의 한 장면 같았다.

    양념을 준비하는 풍경도 그날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고춧가루는 붉은 색을 은은하게 빛냈고, 다진 재료들은 각각의 향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양념에 손이 닿으면 맵지도 달지도 않은 고유의 촉감이 느껴졌다.
    재료가 섞여가는 동안 색과 냄새는 점점 더 깊어졌고, 양념은 김장날의 중심이 되었다.

    배추 잎에 양념이 스며드는 과정은 느리지만 분명했다.
    잎을 펼치고, 양념을 올리고, 잎 사이로 골고루 발라 나가는 그 움직임은 계절의 흐름과 닮아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차갑게 굳어가는 공기와 달리 양념이 스며드는 배추의 온기는 한결 같이 따뜻했다.

    배추가 켜켜이 쌓일수록 김장 항아리에서는 깊은 냄새가 올라왔다.
    항아리 내부의 온도는 겨울 공기와 달리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그 분위기 안에서 배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을 품었다.
    항아리 안에 쌓이는 배추들은 소리 없이 자리 잡았고, 김장날의 공기는 그 움직임과 함께 점점 더 차분해졌다.

    항아리 뚜껑을 덮는 순간은 김장날의 끝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뚜껑이 닿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겼다.
    그 울림은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처럼 차분하고 단단하게 들렸다.

    김장날의 풍경은 어떤 특별한 장식이나 요란함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재료의 색과 냄새, 손끝에 닿는 촉감, 겨울 공기가 만들어낸 분위기 모두가 합쳐져
    오래도록 기억되는 풍경이 되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바르고 항아리에 담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정성이 겨울의 긴 나날을 지탱해 주었다.

    김장날은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
    계절을 받아들이고 겨울을 미리 맞이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배추 하나, 양념 한 줌, 항아리의 한 공간이 모두 모여
    겨울의 시간을 천천히 채워 나갔다.

    그날의 공기와 냄새, 손의 움직임은
    겨울이 한참 지난 뒤에도 오래 남아
    김장날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