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가을이 끝나고 들판에 볏단이 모이기 시작하면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이 생겨났다.
수확을 마친 논에는 볏단이 가지런히 세워졌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짚 특유의 따뜻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그 향과 볏단의 결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작은 놀이터를 열어주는 신호였다.
볏단은 일정한 간격으로 묶여 있었고
햇빛을 받으면 황금빛에 가까운 색을 띠었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져보면
짚의 건조한 감촉이 손끝에 느껴졌다.
겨울을 앞둔 들판은 차가웠지만
볏단 사이에서만큼은
부드러운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볏단 사이의 좁은 틈을 발견하면
그곳을 작은 방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볏단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틈 사이에 들어서면
외부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짚냄새가 가까이에서 더 진하게 풍겨왔고
그 냄새는 들판에서만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이었다.
볏단 사이의 공간은
단순히 숨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과 놀이가 펼쳐지는 자리였다.
넓지 않지만
작은 손과 발로 움직이기에는 충분했고
볏단 벽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조용히 받아주었다.
바람이 지나가도 볏단이 흔들릴 뿐
안쪽의 공간은 안정감이 있었다.
볏단 위로 햇빛이 떨어지면
틈 사이로 작은 빛줄기가 들어왔다.
그 빛은 짚결에 부딪혀
곳곳에서 반짝이는 느낌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빛을 따라
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돌멩이를 모아
자기만의 비밀 물건을 숨기기도 했다.
볏단 사이의 바람 소리는
들판의 바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짚이 바람을 부드럽게 막아주며
속삭이듯 흔들렸고
그 소리 속에서
아이들의 상상은 더 자유로워졌다.
때로는 비밀 아지트처럼,
때로는 겨울을 준비하는 작은 집처럼 느껴졌다.
짚의 냄새는
계절의 냄새였다.
햇빛 아래서 잘 말린 볏단은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향을 품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향을 맡으며
자연스레 편안함을 느꼈다.
작은 숨터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고요함이 가득했다.
어른들이 일하는 들판과
아이들의 아지트는 서로 이어진 공간이었지만
그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어른들은 추수를 마무리하느라 바빴고
아이들은 짧은 틈 사이의 시간을
자신들만의 세계로 만들었다.
들판의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이
겹쳐지며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볏단 아지트에서 놀다가
이리저리 뛰어나오면
짚가루가 옷에 붙어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 그 짚가루는
작게 반짝였고
아이들은 그 모습마저 재미있어했다.
짚가루를 털면서 웃는 순간은
그날 하루를 더 환하게 만들었다.
저녁이 가까워져
볏단의 그림자가 길어질 때쯤
아이들은 아지트에서 천천히 나오곤 했다.
볏단 사이의 온기는
하루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었고
짚 사이에서 보던 하늘의 모습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볏단 사이에 만든 아이들의 숨터는
계절이 만들어준 작은 선물이었다.
바람, 햇빛, 짚냄새가
하나의 공간에 모여
아이들만의 조용한 놀이터가 되었다.
그 장소는 겨울바람이 다가오기 직전
들판이 준 따뜻한 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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