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추석을 이틀 앞둔 날이면 마당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
해는 조금 낮게 떠 있었고, 햇빛은 빠르게 식어가는 가을바람 사이를 천천히 흘러갔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 위에는 큰 쟁반과 절구, 고운 쌀가루가 한가득 놓여 있었다.
기왓지붕 아래에서 퍼지는 가을의 냄새는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분주한 기운을 담고 있었고, 그 기운은 온 집안에 조용히 번져갔다.
아침 햇살은 부드럽게 마당을 비추었다.
그 빛이 기왓장 위에서 은근하게 퍼지면 작업이 시작될 시간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마루에서 들려오는 작은 기척과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곧 송편을 빚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쌀가루가 담긴 큰 대야가 마당 한쪽에 놓이면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둘러앉았다.
쌀가루는 손끝에 닿자마자 포슬포슬하게 부서졌고, 물이 조금씩 더해지면 천천히 매끄러운 반죽으로 변해갔다.
손바닥으로 반죽을 굴릴 때마다 흰빛이 은은하게 올라왔고, 반죽이 모양을 갖춰갈수록 촉감은 더 부드러워졌다.
이 첫 과정은 단순했지만 추석을 준비하는 마음이 가장 많이 담기는 순간이었다.
가을바람이 스칠 때면, 반죽 위의 얇은 가루가 살짝 날리기도 했다.
그러면 누군가는 반죽을 덮어둘 헝겊을 조심스럽게 펼쳐 놓았고, 반죽이 마르지 않도록 손끝으로 살며시 눌러두었다.
작은 배려 하나가 송편의 모양과 맛을 바꾸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무 그릇에 담긴 깨·콩·밤소는 각각 다른 향을 품고 있었다.
깨소는 구수한 냄새가 진했고, 콩소는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결을 가졌다.
밤소는 잘게 으깬 단맛이 은근히 도는 향을 풍겼고, 그 향은 바람이 불 때마다 마당에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각기 다른 소는 송편의 맛을 풍성하게 만드는 조용한 역할을 했다.
반죽 한 줌을 떼어 둥글게 만들고 손가락으로 오목한 자리를 만들면 소를 담을 공간이 생겼다.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접는 동작은 익숙한 듯 보였지만 손마다 결이 달랐다.
어떤 손은 조심스럽게 모서리를 눌렀고, 어떤 손은 힘 있게 접어 매끈한 곡선을 만들었다.
반죽 표면에 남은 손결은 그날 함께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기록하는 듯했다.
송편이 쌓여가는 쟁반 위에서는 가을 햇빛이 흰 반죽에 살짝 스며들었다.
그 빛은 마당 위의 최소한의 장식처럼 보였다.
백색의 반죽과 가을빛이 만나면 부드러운 음영이 생겼고, 그 음영 속에서 송편들은 천천히 제 모습을 갖춰갔다.
바람이 스칠 때면 쟁반 위의 쌀가루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움직임은 추석 준비의 시간성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마당 끝에서 쌀가루를 손으로 만져보거나, 작은 반죽으로 장난을 치며 어른들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때로는 잘못 빚은 송편이 반달 모양이 아닌 둥근 형태로 나오기도 했고, 누군가는 그 모양을 귀엽다며 웃기도 했다.
이 작은 장면들은 송편 빚기 전날에만 볼 수 있는 따뜻한 풍경이었다.
송편을 모두 쟁반에 담으면, 마지막으로 솔잎 준비가 시작되었다.
솔잎은 송편이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해줄 뿐 아니라 향도 은근하게 더해주었다.
솔잎을 물로 가볍게 헹군 뒤 하나씩 쟁반에 깔아두면, 마당은 금세 솔잎 냄새로 가득해졌다.
그 냄새는 송편이 찜통에서 익어갈 때 훨씬 진해졌고, 익어가는 과정이 마당 전체에 알려지는 듯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송편이 하나둘 완성되어 찜통 속에 가지런히 올려졌다.
뚜껑을 닫는 순간 내부에서는 조용한 김소리가 났고, 밖에서는 솔잎 향이 더 깊어지며 가을의 냄새와 뒤섞였다.
송편이 익는 동안 마당에는 잠시 고요가 찾아왔지만, 그 고요 속에는 하루의 온기가 따뜻하게 머물러 있었다.
찜통에서 김이 가득 올라오면 송편은 마침내 제 모양을 갖추었다.
반달 같은 모양 사이로 솔잎 선이 얇게 남아 있었고, 촉촉하게 반짝이는 표면은 막 익은 송편의 기운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한입 베어 물면 속이 부드럽게 흘러나오며 추석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추석 이틀 전 마당에서 송편을 빚던 풍경은
특별한 장식이나 요란한 과정 없이도 깊은 계절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손끝으로 반죽을 눌러 이어진 곡선, 소를 넣는 동작, 솔잎을 하나씩 가지런히 올리던 순간까지.
모든 장면이 추석을 기다리는 마음과 가족이 함께 만든 하루의 기록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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