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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아궁이 앞에 모여 앉던 겨울의 오후

📑 목차

     



    부엌은 겨울이 되면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날카로웠지만
    아궁이 앞은 늘 부드러운 온기를 품고 있었다.
    부엌의 공기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연기 냄새가 섞여
    겨울 오후의 정서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궁이 근처에 앉으면
    바닥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먼저 다가왔다.
    불이 작게 타오르며 내는 소리는
    부엌 전체를 은근하게 감싸고 있었고,
    그 소리만으로도 오후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부엌 아궁이 앞에 모여 앉던 겨울의 오후


    부엌에서 보내던 겨울 오후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장작을 하나씩 더 넣을 때마다
    불빛은 조금 더 밝아졌고
    아궁이의 안쪽에서는 나무가 타며
    작은 균열음을 냈다.
    그 순간마다 불씨가 살짝 튀었고
    붉은 빛이 아궁이 속에서 짧게 흔들렸다.

    아궁이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말수가 적었다.
    차가운 바깥에서 금방 들어온 이들은
    손바닥을 불 앞에 내밀어
    잠시 몸을 데우곤 했다.
    얼었던 손등이 천천히 풀릴 때
    겨울 오후의 고요함이 더 깊어졌다.

    부엌 천장에는
    연기가 은은하게 걸려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면
    연기가 잠시 아래로 내려와
    부엌 안을 가볍게 흐렸다.
    그러면 아궁이 앞에 앉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젖히며
    연기의 흐름을 피했다.
    이 작은 몸짓조차
    겨울 부엌의 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부엌 한쪽에 놓인 질그릇과 나무 바구니는
    햇빛 대신 아궁이 불빛을 받아
    미묘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릇의 표면은 불빛에 비쳐
    고르게 반짝였고
    바구니의 결은 그림자처럼 가늘게 드러났다.
    물기가 살짝 남은 채소 냄새와
    따뜻하게 데워진 흙냄새가 합쳐지면
    부엌만의 조용한 향이 퍼졌다.

    겨울 오후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장작이 타는 속도에 따라
    불의 강약이 달라졌고
    그에 맞춰 부엌의 온기도 조금씩 바뀌었다.
    불이 약해지는 순간에는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작을 다시 넣어주었고,
    그 동작이 끝나면
    부엌은 다시 온기를 되찾았다.

    아궁이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때로는 서로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 말들은 길지 않았다.
    불 좀 더 넣을까,
    바람이 좀 센데
    이런 짧은 말들이 오갔고
    그 사이사이로는
    장작 타는 소리만 가만히 이어졌다.
    긴 이야기가 오가지 않아도
    그 자리는 충분히 따뜻했다.

    부엌 문 밖에서는
    겨울빛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해가 서서히 기울면
    문턱 근처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림자는 부엌 바닥을 따라
    아궁이 근처까지 스며들었고
    불빛과 겨울빛이 만나
    고요한 대비를 만들었다.
    이 조용한 변화를 바라보면
    시간이 조금씩 저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낌으로 먼저 전해졌다.

    불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부엌은 다시 고요해졌다.
    아궁이 속에서는
    나무 조각들이 천천히 붉은 잔불로 바뀌었고
    그 잔불은 겨울의 찬 공기와 닿아
    아주 약한 소리를 냈다.
    잔불이 존재감을 잃어갈수록
    부엌의 빛도 조금씩 약해졌지만
    그 온기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 오후의 부엌은
    특별한 일 없이도 따뜻함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아궁이 앞에 모여 앉아
    서로의 기척을 느끼고
    바람의 흐름을 듣고
    불빛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절반이 차분하게 채워졌다.

    이 시간은
    누가 먼저 시작하거나 끝내는 순간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오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불빛이 약해지면
    천천히 마무리되는 모습이었다.
    이 단순한 흐름 속에서
    겨울의 부엌은 가장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었지만
    아궁이 앞에 모여 앉던 겨울 오후의 시간은
    삶에서 지나간 계절의 한 장면처럼
    은근한 온기를 남기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풍경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