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솔숲 가장자리에서 낙엽을 모아두던 날

📑 목차

     

     


    솔숲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은근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풀잎과 마른 솔잎이 스치는 소리가
    가볍게 귓가에 닿았고,
    그 소리는 날씨와 상관없이
    숲이 지닌 고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숲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조금 더 차분한 결을 띠었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아침부터 깔끔하게 선을 그으며 내려앉았다.

    솔숲 가장자리에서 낙엽을 모아두던 날



    솔숲 가장자리에는
    여름 내내 짙은 녹음으로 가려졌던 땅이
    가을이 오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솔잎 사이로 떨어진 낙엽은 색이 다양했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가벼운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가까이 다가와 손으로 낙엽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바삭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섞여 있어
    무심코 오래 만지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낙엽을 모으던 날은
    딱히 정해진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숲가에 놓여 있던 빗자루를 들면
    또 다른 이가 상자를 가져오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모두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낙엽은 넓게 흩어져 있었지만
    사람 손이 닿기 시작하면
    금세 한 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서두름이 없었고
    조심스럽고 느린 동작이 이어졌다.

    바닥에 내려앉은 낙엽은
    빛을 받을 때마다 색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햇빛에 반사된 부분은 밝게 빛났고
    그늘 아래 쌓인 부분은 짙은 갈색을 띠었다.
    손으로 낙엽을 모을 때
    사이사이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소리는
    작고 규칙 없는 파도 같았다.
    낙엽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그 소리는
    숲 전체를 더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모으는 동안 마음도 차분해지는 듯했다.

    솔숲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바람이 지나가며 솔잎을 세차게 흔들지는 않았지만
    그 잔잔한 움직임만으로도
    숲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낙엽더미가 하나둘 커질 때마다
    숲의 냄새는 조금 더 무게를 갖는 듯했다.
    낙엽 속에는 가을 내내 떨어진 솔방울과
    작은 가지 몇 개가 묻혀 있었고
    그것들까지 함께 모으는 일은
    가벼운 손놀림으로도 충분했다.

    모은 낙엽은
    비바람이 크게 불기 전
    한곳에 단단하게 쌓아 두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엽더미가 흩어지지 않도록
    가장자리부터 눌러 다졌다.
    땅의 숨결과 낙엽의 질감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면서
    숲의 시간을 함께 쌓아 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은 쌓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아이들은 그 모습을 따라 하다
    낙엽더미 위에 넘어지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숲 주변을 걷다 보면
    낙엽더미 옆에 작은 공터가 하나 나타났다.
    그곳은 사람들의 작업이 잠시 멈추는 자리였다.
    바람이 느리게 지나갈 때
    솔숲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사람들은 그늘의 방향을 살피며
    낙엽이 날리지 않도록 모인 자리를 또 확인했다.
    큰 소리나 빠른 움직임 없이도
    공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잠시 쉬던 사이
    누군가는 숲 끝으로 걸음을 옮기며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주워 들었다.
    그것을 낙엽더미 옆에 모아 두면
    아이들은 또 다른 놀이를 만들기도 했다.
    작은 돌과 솔방울로
    집 모양을 만들거나
    줄지어 세워 길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낙엽더미 꼭대기에 올려두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햇빛이 기울기 시작하면
    낙엽의 색은 더욱 깊어졌다.
    그때쯤이면
    낙엽을 모으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서서히 느려졌다.
    손끝에 남은 낙엽의 가루는
    작은 흔적처럼 남았고
    옷깃에도 가볍게 붙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낙엽더미 주변을 살펴보았다.

    솔숲을 떠나기 전
    뒤돌아보면
    낙엽을 모아 둔 자리만
    햇빛을 받아 고르게 빛났다.
    숲의 다른 부분보다
    유난히 정돈된 그 모습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다는 표시였다.
    낙엽이 쌓여 만들어진 그 부드러운 곡선은
    숲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들어
    그날의 시간을 고요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이날의 풍경은
    특별한 행사가 있었던 것도,
    큰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숲에 떨어진 시간을
    손으로 조심히 모아두는 과정이었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천천히 움직이던 하루였다.
    솔숲 가장자리에서 낙엽을 모아두던 날의 장면은
    계절이 바뀌어도 오래 기억되는
    소박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