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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판에 피어오른 첫 서리길을 걸으며

📑 목차

    겨울 들판에 피어오른 첫 서리길을 걸으며 겨울의 기운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들판은 하루 사이에도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밤새 얼어 있던 공기 속에서 새벽 햇빛이 조금씩 퍼지면
    들판 가장자리부터 하얀 빛이 얇게 번져 나갔다.

    서리는 눈처럼 쏟아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땅 위를 가볍게 감싸며 겨울이 문턱을 넘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들판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바람의 냄새도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겨울 들판에 피어오른 첫 서리길을 걸으며

     

    서리가 내려앉은 흙길은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부서지는 느낌이 나고
    그 아래에서 차가운 흙의 온도가 천천히 전해졌다.
    들판은 움직임이 없었지만
    서리가 반사하는 빛 덕분에
    풍경 전체가 얇은 막을 두른 듯 고요하게 빛났다.

    논두렁을 따라 이어진 풀잎에도
    서리가 얇게 앉아 있었다.
    풀잎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며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무늬까지
    아침빛을 받아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람이 스치면 풀잎 끝의 서리가 작게 흔들리며 반짝였고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겨울의 시작이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었다.

    한 걸음씩 들판을 더 깊게 들어가면 
    햇빛이 땅 위에 내려앉는 각도도 달라졌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는 순간
    서리는 천천히 색을 잃기 시작했고
    반짝이던 결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서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잠시 머무는 그 순간은
    겨울만 가진 독특한 정적이었다.

    들판 한쪽에는
    지난 계절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마른 줄기와 바람에 눕혀진 풀들이
    서리 위로 얹혀 있어
    가벼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그림자들은 움직임이 없었지만
    빛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형태를 바꾸며
    겨울 들판의 시간을 천천히 알려주었다.

    서리를 밟고 걷는 길은
    말소리를 크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풍경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들판을 가르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바람 속에는
    햇빛에 녹아내리기 시작한 서리의 향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바람의 결을 따라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길을 조금 더 걷다 보면
    들판의 온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해가 조금씩 높아지며
    서리가 얇게 사라져 가면
    흙길의 색도 서서히 돌아왔다.
    아까까지는 부서지는 소리를 냈던 땅이
    이제는 차가운 촉감만 남긴 채
    조용히 굳어 있었다.

    들판 가운데에 서서 잠시 멈춰 보면
    겨울의 공기와 빛이
    어떻게 한 공간을 만드는지
    고요하게 느껴졌다.
    들판의 너머에서는
    새벽을 깨우는 작은 소리들이
    아주 늦게서야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소리들은 서리가 물러나는 속도와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서리가 모두 사라지기 전
    풍경은 가장 선명한 색을 드러냈다.
    하얀 막처럼 남아 있던 부분은
    햇빛이 스칠 때마다 반짝였고
    그 아래의 흙은
    겨울의 단단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들판 전체가 맑은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리가 사라질 무렵
    들판의 풍경은 다시 평범한 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변화를 바라보는 동안
    겨울 아침만의 깊은 정적과
    하얀 빛의 흐름이 남겨졌고
    그것들은 하루의 시작을
    천천히 여는 작은 의식처럼 보였다.

    겨울 들판에 피어오른 첫 서리길은
    크게 꾸미지 않은 자연의 모습이었지만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겨울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