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겨울이 깊어지면 마을의 새벽 공기는 유난히 차가워졌다.
집 안에서 문을 여는 순간, 숨을 내쉴 때마다 흰 입김이 짧게 번졌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는 자리는 언제나 우물가였다.
여기에서 우물가 풍경이 담긴 사진이나 삽화를 한 장 넣어 주면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우물은 마을 한가운데 조금 낮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밤새 내려앉은 서리가 돌담과 지붕 위에 얇게 깔려 있었고,
우물 둘레를 감싼 돌에는 하얀 기운이 살짝 내려앉아 있었다.
손으로 돌을 만지면 얼음막이 손끝에서 바로 느껴졌고,
그 차가움은 졸음을 남김없이 깨우는 듯했다.
우물가로 향하는 발걸음은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걸음에는 늘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물동이를 든 어른의 발자국이 먼저 나가고,
그 뒤를 작은 발자국이 조심스레 따라가곤 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라
길가의 나무와 담장은 윤곽만 남은 채 어둑하게 서 있었다.
우물 가까이 다가가면
먼저 들려오는 것은 새소리도, 사람 목소리도 아니었다.
우물 깊은 곳에서 천천히 울려 나오는 물의 소리였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물이 조금씩 스며들어 모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겨울의 공기 속에서 그 울림은 더 또렷하게 들렸다.
두레박 줄을 잡고 천천히 내려보내면
줄이 손가락 사이를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두레박 주변에 맴돌았고,
나무로 된 손잡이는 밤새 식어 단단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두레박이 물에 닿는 순간 작은 파문이 일었고,
우물 벽에 부딪힌 물소리가 둔탁하게 되돌아왔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말없이 잠깐 멈춰 섰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물가에는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짚신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만 조용히 섞였다.
겨울 새벽 특유의 고요함이
우물 가장자리에서 한 번 더 단단해지는 듯했다.
두레박을 다시 끌어올릴 때
팔과 어깨에는 짧지만 묵직한 힘이 들어갔다.
물을 가득 머금은 두레박은
겨울 아침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동이에 물을 옮겨 붓는 순간
투명한 물결이 동그랗게 퍼져 나갔고,
차가운 표면 아래에서
우물물 특유의 맑은 냄새가 은근히 올라왔다.
우물가 바닥에는
얼지 않도록 나무 발판이 놓여 있었다.
발판 위에 서 있으면
단단하게 얼어붙은 흙바닥과는 다른 감촉이 전해졌다.
나무 결 사이로 스며든 물기가
밤사이 다시 얼어 살짝 미끄럽기도 했지만,
거친 표면 덕분에 발은 쉽게 미끄러지지 않았다.
겨울 아침의 우물가는
사람보다 물이 먼저 말을 거는 자리 같았다.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물소리,
두레박이 돌에 스치는 소리,
물을 옮길 때 흔들리는 물동이의 작은 철컥임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그 위로 사람들의 짧은 대화가 조용히 얹혔다.
물을 다 채우고 돌아설 때면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멀리 산등성이 위로 희미한 빛이 번지면
마을 지붕 위에 쌓인 서리도 조금씩 윤기를 띠었다.
찬 공기 속에서 물동이를 어깨에 올리면
무게는 분명했지만
그 무게 덕분에 몸이 확실히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곳곳에서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집의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라
차가운 공기 위에서 길게 늘어졌다.
우물에서 떠온 물은
이제 부엌으로 향해
하루의 일을 준비하는 물이 되었다.
아이들이 우물가에 따라 나왔던 날에는
풍경이 조금 더 달라졌다.
어른이 두레박을 올리는 동안
아이들은 돌담 위에 앉아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거나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지 살폈다.
겨울이라 김이 서려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어렴풋한 형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장면이었다.
때로는 물이 너무 차가워
양손이 저릿해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잠시 손을 문질러 감각을 되찾았다.
차가운 물에 여러 번 손이 닿다 보면
피부는 금세 붉게 변했고,
그 붉은 기운은
겨울 아침의 냉기를 견디고 있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우물가에서의 일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는
겨울 공기의 냄새,
돌의 감촉,
물의 온도,
연기의 움직임까지
여러 겹의 풍경이 겹쳐 있었다.
모두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
우물가는 먼저 하루를 열고
조용히 제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흘러 상수도와 수도꼭지가 들어온 뒤에도
우물가 풍경을 떠올리는 이들은
그 아침의 공기를 잊지 못한다.
차가운 돌에 손을 얹던 느낌,
두레박이 흔들리며 물을 올리던 순간,
무거운 물동이를 들고 돌아오던 길의 숨소리까지
모두 겨울 마을의 기억 속에 겹겹이 쌓여 있다.
겨울 아침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일은
그저 물을 길어 오는 수고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하루를 준비하며
몸과 마음을 천천히 깨우는 과정이었고,
마을 사람들이 같은 우물에서 물을 나누어 쓰며
하루의 시작을 함께 맞이하던 시간이었다.
차가운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조용한 발걸음이 모여
겨울 아침의 우물 풍경을 완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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