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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산자락에서 이어지던 버드나무 가지 꺾어 피리 만들기

📑 목차

     

     

     

    봄철 산자락에서 이어지던 버드나무 가지 꺾어 피리 만들기

     

    봄기운이 산자락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마을 아이들은 저마다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긴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땅이 조금씩 풀리고, 산 아래를 따라 흐르는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지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드는 날은 아이들에게 특히 설레는 시간이 되었다.

     

    산자락의 버드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물기를 머금어 말랑해졌다.
    아침 햇빛이 가지 끝에 닿으면 그 위로 얇은 물막이 생기고, 그 아래에서 잎이 준비하듯 봉오리를 부드럽게 틔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고, 산길을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선 자리를 향해 자연스럽게 뛰어갔다.

     

    버드나무는 손에 닿으면 차갑지 않았고, 꺾을 때도 다른 나무에 비해 훨씬 부드러웠다.
    필요한 건 너무 굵지 않은 가지 한두 개였다.
    손으로 가볍게 비틀면 껍질이 잘 벗겨졌고, 그 결 사이에 스며 있는 수분이 피리를 만들기에 알맞은 감촉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은 단순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힘과 속도가 맞아야 껍질이 깨끗하게 빠져나왔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손바닥으로 나무를 굴리고, 껍질이 헐겁게 돌아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가지가 바스락거리며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흠집을 내고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이렇게 껍질을 통째로 뽑아낸 순간, 피리의 형체는 이미 절반 이상 완성된 셈이었다.
    그 순간의 감각은 늘 짧지만 뚜렷했고,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은 아이들에게 작은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피리가 될 껍질 속에 들어갈 나무 몸통은 살짝 깎아내 길을 만들어주었다.
    너무 깊게 깎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고, 너무 얇으면 숨결이 그대로 빠져버렸다.
    아이들은 서로의 피리를 들어보며 “이건 소리가 답답해”, “이건 잘 울린다” 하며 자연스럽게 기준을 만들어갔다.
    산자락을 따라 퍼지는 작은 휘파람과 비슷한 음색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봄볕이 따뜻해질수록 피리 소리는 점점 더 명확해졌다.
    가까운 곳에서는 얇고 높은 소리가 들렸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낮고 부드러운 음색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만든 피리를 자랑하며 산길을 따라 걷거나, 바위 위에 올라가 바람이 가장 잘 부는 방향으로 피리를 불어보기도 했다.

     

    피리를 만들 때의 가장 큰 즐거움은, 완성된 소리가 아니라 그 과정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껍질을 벗기는 데 서툴러 쉽게 부러뜨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너무 얇게 깎아 한 번에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아이들이 돌아와 도와주거나, 본인이 아까 실패한 방식을 말하며 자연스럽게 배움의 자리가 되었다.
    봄 산자락은 늘 조용했지만, 이런 순간에는 작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점심 무렵이 되면 햇빛이 산의 중턱까지 올라와 나무 잎 사이를 통과했다.
    빛은 버드나무 껍질 위에 잔잔히 비쳤고, 아이들이 손 끝에 들고 있는 피리 위에도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 빛 속에서 피리는 더욱 맑은 색을 드러냈고, 나무결의 자연스러운 갈색이 봄 풍경과 어울렸다.

     

    산길 아래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람은 흙냄새와 마른 풀 향기를 함께 실어 나르며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아이들은 돌 위에 걸터앉아 서로의 피리를 들어보거나,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소리를 이어갔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봄날의 공기와 어울려 작은 풍경 하나를 완성했다.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손끝도 서서히 느려졌다.
    산자락의 기운이 다시 차가워지면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피리를 품에 넣고 조심스레 산길을 내려갔다.
    돌아가는 걸음에서도 나무껍질의 향이 손끝에 은은하게 남아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피리 안쪽에서 작은 울림이 들리는 듯했다.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들던 이 풍경은 거창한 놀이가 아니었다.
    도구도 필요 없었고, 기술도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봄의 변화와 자연의 결을 손끝으로 느끼며,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었다.
    이 풍경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마을 아이들의 봄을 채워주던 소중한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