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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전날 집안에서 이어지던 장터용 음식 준비하던 오전

📑 목차

     

     

     

    장날을 하루 앞둔 집안의 오전은 평소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속도는 똑같았지만, 그날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조금 더 빠르게 느껴졌다.

     

    아궁이 앞에서는 이미 불길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고, 부엌으로 들어오는 공기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

    장날 전날 집안에서 이어지던 장터용 음식 준비하던 오전

     

    장터에 나갈 준비는 아침 해가 비추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오늘 만들어야 할 음식은 집집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국거리와 부침, 말린 나물, 간단한 장아찌나 반찬류가 빠지지 않았다.
    시장 사람들에게 나눌 음식이기도 했고, 장에 나갈 가족들이 먹을 도시락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장날 전날의 부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주해졌다.

     

    부엌 한쪽에는 나물과 야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날 저녁에 씻어 물기를 빼둔 재료들은 밤새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아침 햇빛을 받기 직전의 신선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나물을 다듬는 손길은 빠르지 않았지만 정확했고, 재료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결을 따라 움직였다.

     

    솥에서는 이미 물이 끓기 시작했다.
    김이 천천히 솟아오르면 부엌 전체가 따뜻해졌고, 흙벽과 나무 기둥에도 온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뜨겁게 데워진 솥에 삶을 재료를 넣으면 물결이 잠시 흔들리고, 이어서 풍기는 향이 오전 공기와 섞여 부엌을 채웠다.
    이 향은 장날 전날만 느낄 수 있는 집안의 작은 약속 같은 것이었다.

     

    반찬을 볶는 과정도 바빴다.
    들기름을 두른 팬에 나물을 넣고 살짝 볶으면 고소한 향이 부엌 바닥까지 퍼졌다.
    들기름의 묵직한 향은 장터 음식의 기본처럼 여겨졌고, 볶는 동안 들리는 잔잔한 소리는 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한쪽에서는 젓갈과 장아찌를 꺼내 맛을 보고, 간을 맞춰 장터에 가져갈 준비를 했다.

     

    부침 요리는 장날 음식 준비에서 빠질 수 없었다.
    부침반죽을 휘휘 저으면 밀가루와 물의 결이 천천히 섞였고, 팬 위로 반죽이 퍼지면 부엌 안에 달큰한 냄새가 감돌았다.
    집마다 즐겨 만드는 방식이 달라, 어떤 곳은 쪽파를 듬뿍 넣고, 어떤 집은 호박이나 감자를 더해 부침을 만들었다.
    부침을 뒤집을 때 나는 짧은 소리는 집안에 작은 활기를 더해 주었다.

     

    장터에 가져갈 도시락을 싸는 일은 오전 중반에 이어졌다.
    밥을 지은 뒤 넓은 찬합에 차곡차곡 담고, 반찬을 나누어 정갈하게 놓았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손길에는 가족들의 다음 하루를 준비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가족이 장터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낼지 떠올리며 음식을 담다 보면 자연스레 집안의 분위기도 따뜻해졌다.

     

    부엌 밖에서는 아이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이들은 오늘 준비된 음식을 맛볼 생각에 아침부터 기대에 차 있었고, 부엌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향기에 코끝을 씰룩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조금 떼어주기도 했고, 그 작은 한입이 아이들에겐 장날 전날만의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오전 햇빛이 부엌 창문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음식 준비는 점차 마무리 단계로 들어갔다.
    부침은 식지 않도록 보자기로 덮어두고, 나물은 찬기에 고르게 담아 향이 날아가지 않게 덮어두었다.
    솥 한쪽에 끓이고 있던 국물은 불을 줄여 은근히 끓이며 맛을 더했다.
    이 모든 과정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장날을 맞이하는 집안 고유의 흐름이 되었다.

     

    갈무리를 마친 뒤 어른들은 부엌에 묻은 밀가루나 나물 잔가지를 털어내고 잠시 숨을 고르듯 걸터앉았다.
    하지만 표정에는 고단함보다 안도감이 더 짙었다.
    오늘 준비한 음식이 내일 장터에서 도움이 되고, 하루를 든든하게 해 줄 것이라는 마음이 그들의 손과 표정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부엌 안의 향도 천천히 잦아들었다.
    준비된 음식들은 상자나 바구니에 담겨 한쪽에 가지런히 놓였고, 장터로 갈 준비가 모두 끝났음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부엌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조금 전의 바쁜 움직임은 그대로 남아 하루를 기록하는 듯했다.

     

    장날 전날 집안에서 이어지던 이 오전의 풍경은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한때는 마을의 일상에서 가장 기대되고 소중한 장면 중 하나였다.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 속에 담긴 정성과 가족에 대한 마음은 오랫동안 변치 않으며, 농촌 공동체가 지닌 따뜻한 생활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