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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꿀벌 산벌 피하는 날, 벌통 주변 돌보기 풍경

📑 목차

     

     

     

    늦여름이 되면 마을의 공기는 한층 무겁게 가라앉곤 했다.
    볕은 여전히 강했고, 장마 뒤로 남은 습기는 밤까지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시기 마당 한켠의 벌통들은 여름 내내 모아 온 꿀 향을 품고 있었고, 꿀벌의 움직임도 점점 분주해졌다.
    가을을 앞두고 벌집이 무거워지는 이때는 마을 사람들이 늘 조심스레 움직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늦여름 꿀벌 산벌 피하는 날, 벌통 주변 돌보기 풍경

     

    꿀벌은 여름 끝자락쯤 되면 민감해진다.
    낯선 냄새나 큰 소리에도 쉽게 방향을 바꾸고, 순간적으로 벌통 밖으로 몰려나오는 산벌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늦여름의 벌통 돌보기는 조용한 손길과 천천히 이어지는 움직임이 가장 중요했다.
    벌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규칙이었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 마당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벌통 주변은 햇빛을 오래 받아 나무결이 옅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벌통 옆면을 살짝 짚으면 낮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고, 그 온기는 벌들이 안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주변의 풀은 며칠 사이 빠르게 자라 있었고, 꽃이 적어지는 시기라 벌들이 더 먼 곳까지 날아다니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늦여름 벌통 점검은 풀을 정리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벌통 가까이 엉켜 있는 풀을 손으로 천천히 젖혀가며 주변을 정돈했다.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벌통 내부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기 때문에, 벌들이 한결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벌 몇 마리가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지만 위협적인 자세는 아니었다.
    사람과 벌 사이에 오래도록 이어져 온 조용한 호흡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통의 뚜껑을 조금 열어 내부를 확인하는 일은 가장 조심스러운 순간이었다.
    뚜껑을 갑자기 열면 벌들이 놀라 흩어지기 때문에 아주 작은 틈만 먼저 열어 안쪽 공기를 살피는 방식이었다.
    그 틈 사이로 따뜻한 공기와 함께 꿀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고, 그 향은 늦여름 특유의 부드러움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벌집을 직접 손대지는 않았고, 벌들의 움직임만 살펴보며 필요한 조치가 있는지 조용히 확인하는 정도였다.

     

    벌통 앞에는 꿀을 채취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늦여름에는 꿀을 많이 건드리지 않았다.
    아직 가을맞이 마지막 채밀을 남겨둔 시기이기 때문에 벌들에게 충분한 양을 남겨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도구들은 대부분 평상 옆에 놓인 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고, 이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벌통이 여름을 잘 견디고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하는 일이었다.

     

    산벌을 막기 위해 연기도 살짝 사용했다.
    짚이나 마른 잎을 아주 작게 태워 연기를 벌통 입구에 잠깐 머물게 하면 벌들이 조금 진정되곤 했다.
    연기가 지나가는 동안 벌들은 날개를 가볍게 떨며 움직임을 늦추었고, 그 틈을 이용해 벌통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폈다.
    연기는 강하지 않아야 했고, 바람의 방향도 고려해야 했다.
    자칫 연기가 너무 강하면 벌들이 오히려 멀리 달아나거나 날개짓이 거칠어지기 때문에 그 양을 조절하는 일이 중요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벌들의 움직임도 조금 가라앉았다.
    늦여름 저녁바람은 낮보다 서늘했지만 습기가 있어 벌통 주변 공기는 부드럽게 잦아들었다.
    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와 벌통 입구에 무리를 이루었고, 서로 날개를 부딪히며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 모습은 조용하면서도 묘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작업을 끝내고 도구를 정리하며 벌통을 바라보면, 늦여름 특유의 농도 짙은 공기가 천천히 마당에 내려앉았다.
    벌통 사이로 스며드는 저녁빛은 나무결을 더 깊은 색으로 물들였고, 벌들이 남긴 약한 윙윙거림은 멀리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이 시간대의 마당은 밤으로 넘어가는 문턱처럼 고요하면서도 차분했다.

     

    늦여름 벌통 돌보기는 단순히 꿀을 얻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연의 흐름을 관찰하고 작은 생명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생활의 일부였다.
    벌들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저녁의 온도까지 모든 요소가 조심스레 맞물리며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그때의 벌통 앞 풍경은 늦여름 마을이 품었던 정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중요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