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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을 축제와 전통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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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 우물가 옆 평상에서 이어지던 여름 부채 만들기 여름의 기운이 마을에 깊게 스며드는 시기면 우물가 주변은 다른 계절보다 조금 더 활기를 띠곤 했다.햇빛은 이미 오래전부터 땅을 데우고 있었고,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뜨거움과 서늘함이 섞인 묘한 감촉을 남겼다.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저녁나절, 우물 옆 평상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그날의 평상 위에서는 여름 부채를 만드는 작은 손작업이 조용히 이어졌다. 부채를 만드는 일은 화려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었다.평상 위에는 미리 잘라두고 말려 둔 대나무 살과 한지 조각, 얇은 천 조각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대나무는 여름 햇빛을 충분히 받아 바삭하게 건조되어 있었고, 손끝으로 짚어보면 섬세한 결이 일정하게 느껴졌다.이 재료들은 모두 부채의 ..
장날 전날 집안에서 이어지던 장터용 음식 준비하던 오전 장날을 하루 앞둔 집안의 오전은 평소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해가 떠오르는 속도는 똑같았지만, 그날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조금 더 빠르게 느껴졌다. 아궁이 앞에서는 이미 불길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고, 부엌으로 들어오는 공기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 장터에 나갈 준비는 아침 해가 비추기 전부터 시작되었다.오늘 만들어야 할 음식은 집집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국거리와 부침, 말린 나물, 간단한 장아찌나 반찬류가 빠지지 않았다.시장 사람들에게 나눌 음식이기도 했고, 장에 나갈 가족들이 먹을 도시락이 되기도 했다.그래서 장날 전날의 부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주해졌다. 부엌 한쪽에는 나물과 야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전날 저녁에 씻어 물기를 빼둔 재료들은 밤새 차가..
바람 강한 날 논두렁에서 이어지던 볏짚 말리기 가을이 깊어가면 들판의 바람은 다른 계절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띠었다.햇빛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공기 속에는 겨울을 향해 흘러가는 서늘함이 스며 있었다.벼를 베어낸 뒤 남겨진 볏짚은 이 시기가 되면 말려 두어야 했고, 마을 사람들은 바람이 적당히 부는 날을 골라 논두렁으로 나섰다. 볏짚을 말리는 일은 단순히 농사 뒤처리가 아니었다.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고, 다음 해 농사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다.볏짚은 가축의 먹이로 쓰이기도 하고, 초가집의 지붕이나 생활도구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말리는 것이 늘 중요했다.그래서 바람이 일정하게 불고, 습기가 적은 가을날이면 마을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논두렁으로 모였다. 논두렁 위에는 수확을 마친 흔적이 고요하게 남아 있었다.벼를 베어낸 ..
봄철 산자락에서 이어지던 버드나무 가지 꺾어 피리 만들기 봄기운이 산자락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마을 아이들은 저마다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긴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땅이 조금씩 풀리고, 산 아래를 따라 흐르는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지는 시기였다.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드는 날은 아이들에게 특히 설레는 시간이 되었다. 산자락의 버드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물기를 머금어 말랑해졌다.아침 햇빛이 가지 끝에 닿으면 그 위로 얇은 물막이 생기고, 그 아래에서 잎이 준비하듯 봉오리를 부드럽게 틔우고 있었다.아이들은 그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고, 산길을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선 자리를 향해 자연스럽게 뛰어갔다. 버드나무는 손에 닿으면 차갑지 않았고, 꺾을 때도 다른 나무에 비해 훨씬 부드러웠다.필요한 건 ..
겨울 철 새끼줄 꼬기와 지붕 장식 준비 풍경 겨울이 깊어지면 마을은 자연스레 조용해졌지만, 집집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그중에서도 새끼줄을 꼬아 초가지붕을 손보는 일은 겨울철을 보내기 위한 중요한 준비였다.바람이 센 계절에는 지붕을 눌러주는 짚끈이 특히 필요했고, 눈이 쌓이는 날이면 새끼줄의 단단함이 집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이른 아침이면 마당 한쪽에 볏짚이 차곡히 모여 있었다.가을 추수가 끝나고 건조해둔 짚들은 겨울이 되면 다른 쓰임을 찾았다.가볍게 부서질 듯 보이는 짚 한 단이지만, 사람이 손으로 정성껏 비비고 꼬면 지붕을 묶고 바람을 견디는 강한 끈이 되었다.이 변화는 늘 신기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겨울 마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볏짚은 손에 닿으면 서늘했고, 결마다 가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사람들은 먼..
마을 목동들이 여름에 이어가던 소 먹이 갈대 베기 여름이 깊어지면 마을의 강가와 습지는 색이 더욱 짙어졌다.갈대는 햇빛을 품으며 빠르게 자랐고,바람이 불 때마다 줄기 사이에서 서걱서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마을 사람들은 이 계절을 지나기 위해소에게 줄 먹이를 준비해야 했다.그중에서도 여름 갈대 베기는목동들이 중심이 되어 이어지던 중요한 일과였다.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강가에 도착하면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습기와 풀냄새였다.흙은 낮 동안 햇빛을 받아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고,갈대 사이로는 얇은 바람이 흐르며볕과 그늘이 번갈아 나타났다.목동들은 도구를 어깨에 걸친 채자연스레 움직이며 갈대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갈대는 눈으로 보기엔 가볍고 부드러워 보였지만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잡아보면줄기마다 단단한 결이 있었다.목동들은 갈대의 높이와 굵기를 살핀 뒤베기에..
여름 낮 논가에서 이어지던 물장구 아이들 놀이 해가 한창인 여름 낮,바람도 숨을 죽인 듯 고요한 논가에는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하늘은 너무 맑아서 구름조차 드물었고,그 아래 반짝이는 논물은 작은 세상이 되었다. 논두렁에 맨발로 선 아이들은뜨거운 햇볕을 이기기 위해 물을 찾았다.고개를 들면 햇살에 눈이 부시고고개를 숙이면 논물에 비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그 아래에서 물장구는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작은 손바닥으로 물을 퍼올려 뿌리면햇빛에 반사된 물방울이 눈앞에서 반짝였다.바지를 걷어붙인 채 뛰어다니는 발자국 사이로물고기 한 마리가 스치듯 지나가기도 했다.놀라는 아이들은 깔깔 웃었고,그 웃음은 여름의 무더위를 순식간에 잊게 했다. 논가의 물은 깊지 않아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놀이터였다.다만 미끄러운 진흙길과논두렁 가장자리는 조심해야 했다.하지..
비 오는 날 안채 처마 아래서 하던 조용한 손바느질 모임 여름비가 고르게 내려앉던 날이면 마을의 안채 처마 아래는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작업방이 되곤 했다.들판에서 하는 일은 비로 인해 잠시 멈춰도, 바느질만큼은 날씨를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빗소리가 일정하게 떨어지는 그 시간은 바늘이 천을 가르는 소리와 잘 어울렸고,조용한 움직임 속에서도 집 안이 은근한 온기로 차오르곤 했다. 아침부터 비가 이어진 날이면 안채 마루는 더 넓어 보였다.젖은 흙냄새가 바람에 섞여 들어오고, 처마 끝에서 맺힌 물방울은 일정한 속도로 떨어졌다. 바깥이 흐려도 마당의 초록은 더 선명하게 빛났고,그 풍경은 바느질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처마 아래로 돗자리를 깔고 바늘과 실, 천 조각들이 담긴 작은 함지를 꺼내면바느질 모임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굳이..
가을 저녁 널빤지 위에서 굴리는 들깨 털기 풍경 가을 들판에 해가 조금씩 내려앉는 시간대가 되면, 마을 곳곳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볕이 남아 있을 때 얼른 털어야 하는 들깨 작업은 매년 이맘때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부엌이나 마당보다 널찍한 마당 한가운데가 그 일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자리였다.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면 들깨 향이 은근히 떠올랐고, 그 향은 가을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조용한 신호처럼 다가왔다. 들깨를 털기 전에 먼저 널빤지를 꺼내 마당에 가지런히 놓았다.나무결이 오래되어 조금 거칠었지만, 그 거친 표면이야말로 들깨를 굴려낼 때 가장 적당했다. 널빤지를 햇빛 방향에 맞춰 두면 남은 볕이 나무 위로 부드럽게 퍼졌고, 그 아래서 들깨 작업은 천천히 준비되었다.들깨 줄기를 한 아름 모아 널빤지 위에 올리면, 줄기 끝에서 잔향이..
초가집 부엌에서 이어지던 겨울 장작불 아궁이 청소날 겨울이 깊어지면 초가집 부엌은 다른 계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었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낮게 깔린 장작 냄새와 오래된 흙벽 특유의 온기가 함께 스며 있었다. 하루 중 가장 먼저 깨어나는 곳이 부엌이었고, 장작불이 살아 있는 동안 집 안의 온기는 조용히 이어졌다.그러나 장작불은 매일 피워야 했고,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굳은 재가 서서히 쌓였다.겨울의 어느 날이 오면 그 재를 털어내고 아궁이를 정리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아궁이 청소날은 특별한 의식이 아니었지만, 부엌의 숨결을 새로 만드는 중요한 하루였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장작이 오래 타며 남긴 따뜻한 기운이었다.불은 이미 꺼졌지만 흙벽 근처에는 미약한 온기가 남아 있었고, 손바닥을 대면 겨울임에도 따스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