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축제와 전통놀이 (99) 썸네일형 리스트형 봄 햇살 아래 대청마루를 정리하던 아침 대청마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안 분위기를 가장 먼저 바꾸는 자리였다.문을 살짝만 열어도 바람이 그대로 스며들었고,햇빛은 대청의 나무결을 따라 부드럽게 번졌다.특히 봄이 머물기 시작한 어느 아침,대청마루를 정리하는 일은그 계절의 첫 숨결을 만지는 일처럼 느껴졌다.마루에 앉으면밤사이 내려앉은 차가운 기운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지만곧 햇빛이 나무바닥 위로 번지며온도가 천천히 올라갔다.바깥에서는 새소리가 길게 이어졌고대청 아래로 보이는 마당 역시조용한 움직임을 준비하듯 고요했다.정리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대청의 한쪽에 놓여 있던 작은 소품들을 옮겼다.대야, 대자리, 작은 다과상, 겨울 동안 접어두었던 덧신까지한데 모아 놓으니마루가 갑자기 넓어진 것처럼 보였다.정리를 시작하기 전 이 빈 공간은봄을 맞이하는 마음.. 마당 한쪽에서 새끼줄을 꼬아 만들던 날 마당은 계절과 상관없이 늘 무언가가 시작되는 자리였다.특히 새끼줄을 꼬아 만들어야 하는 날이면마당 한쪽은 조용한 긴장감과 작은 손놀림들이 모여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바람은 크게 불지 않았지만짚냄새가 공기를 따라 부드럽게 흩어졌고햇빛은 마당의 한쪽 벽면을 타고 내려와작업을 하기 좋은 온도를 만들어 주었다.새끼줄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짚단은아직 햇볕이 남아 있는 듯 따뜻했다.짚을 손으로 쥐면가볍게 들어가는 힘에 따라결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느낌이 전해졌다.짚이 부서지지 않도록천천히 풀어내는 과정은새끼줄을 만드는 첫 단계였다.짚을 꼬기 시작하는 순간마당의 소리는 더 잔잔해졌다.짚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마찰음은크지 않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가졌다.이 소리는 작업하는 사람의 손끝과짚의 상태가 얼마나 잘 맞는지.. 부엌 아궁이 앞에 모여 앉던 겨울의 오후 부엌은 겨울이 되면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날카로웠지만아궁이 앞은 늘 부드러운 온기를 품고 있었다.부엌의 공기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연기 냄새가 섞여겨울 오후의 정서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아궁이 근처에 앉으면바닥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먼저 다가왔다.불이 작게 타오르며 내는 소리는부엌 전체를 은근하게 감싸고 있었고,그 소리만으로도 오후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부엌에서 보내던 겨울 오후는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장작을 하나씩 더 넣을 때마다불빛은 조금 더 밝아졌고아궁이의 안쪽에서는 나무가 타며작은 균열음을 냈다.그 순간마다 불씨가 살짝 튀었고붉은 빛이 아궁이 속에서 짧게 흔들렸다.아궁이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은대부분 말수가 적.. 다락방에서 마른 곡식을 골라내던 시간 다락방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은 언제나 약간의 먼지 냄새를 품고 있었다.계단 위쪽에서 스며 나오는 건조한 공기는집 안 어디보다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특히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들 무렵이 되면다락방은 곡식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다락 어귀에 서면 마른 곡식 자루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곡식은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았고,자루를 살짝 흔들면 서로 닿는 곡식알들이작고 단단한 소리를 내며 안에서 움직였다.그 소리는 겨울을 준비하던 집안의 오래된 리듬처럼 들렸다.자루를 열면 건조한 곡식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흙이 빠진 쌀알의 매끈한 결,볏과 먼지를 털어낸 콩의 단단한 표면,좁쌀과 보리가 섞여 만든 잔잔한 색감까지다락방의 빛 아래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곡식을 비.. 장독대 앞에서 햇볕을 살피던 오전 장독대가 있는 마당 한쪽은아침이면 하루 중 가장 고요한 빛을 먼저 받아들이는 곳이었다.햇볕이 기와 아래서 천천히 내려앉을 때,그 빛은 장독의 표면을 부드럽게 감싸며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지곤 했다. 겨울을 지나 봄 기운이 조금씩 스며드는 시기에는장독대 둘레의 공기도 다른 계절과는 묘하게 달랐다.밤새 차갑게 식어 있던 항아리는햇살이 닿기 시작하면겉 표면부터 서서히 온기가 올라왔다.손바닥으로 항아리의 곡선을 살짝 쓸어 보면온도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졌고,그 첫 감촉은 마당의 하루 흐름을 가늠하게 해주는 지표 같았다. 장독대 앞에 서서 햇볕을 살피는 일은특별한 의식이 아니라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이어져 온 작은 확인 과정이었다.햇볕이 어느 방향으로 비추는지,얼마나 따뜻하게 드는지,그 빛이 장독의 어느 .. 추석 이틀 전, 마당에서 송편 빚던 손끝의 풍경 추석을 이틀 앞둔 날이면 마당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해는 조금 낮게 떠 있었고, 햇빛은 빠르게 식어가는 가을바람 사이를 천천히 흘러갔다.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 위에는 큰 쟁반과 절구, 고운 쌀가루가 한가득 놓여 있었다.기왓지붕 아래에서 퍼지는 가을의 냄새는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분주한 기운을 담고 있었고, 그 기운은 온 집안에 조용히 번져갔다. 아침 햇살은 부드럽게 마당을 비추었다.그 빛이 기왓장 위에서 은근하게 퍼지면 작업이 시작될 시간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마루에서 들려오는 작은 기척과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곧 송편을 빚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쌀가루가 담긴 큰 대야가 마당 한쪽에 놓이면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둘러앉았다.쌀가루는 손끝에 닿자마자 포슬포슬하게 부서졌고, 물이 조금.. 봄밤 대청마루에서 이어지던 할머니의 옛이야기 모임 봄밤이 찾아올 무렵이면 마을은 낮과 밤의 공기가 서로 달라지는 시기를 맞곤 했다.낮에는 햇빛이 마당의 나무들 사이를 밝게 비추고 있었지만, 밤이 되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며 계절의 결이 조금씩 바뀌었다. 집집마다 창호지 사이로 은은한 바람이 드나들었고, 그 바람은 겨울 내내 머물러 있던 냉기를 천천히 밀어내며 봄의 향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대청마루도 봄밤이면 다른 표정을 지녔다.낮에는 햇볕을 받아 따뜻했지만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나무 향이 짙어졌고, 발아래서부터 밤 공기의 서늘함이 살며시 올라왔다.바로 이 시간이면 할머니들은 자연스럽게 마루에 모여 앉았다.긴겨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혹은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던 오래된 옛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대청마루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봄밤.. 장독대 둘레에 모여 나누던 김칫독 살피기 하루 새벽 공기가 서늘하게 내려앉은 어느 초겨울,장독대가 있는 마당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조용했다.밤새 식은 흙냄새가 은근히 퍼져 있었고,장독대 위로 내려앉은 얇은 서리는 빛을 받으면 금세 사라질 듯했다.김칫독을 살피는 날이면 마당의 분위기 전체가어디론가 향하려는 숨 같은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햇빛이 닿기 전이라 항아리 표면은 차가웠고,밤새 머금은 냉기가 장독대 주변의 공기까지 조금 더 깊게 만들었다.뚜껑 위에는 마른 솔잎 몇 개가 내려앉아 있었고,항아리는 그 자체로 한 해 동안의 시간을 차분히 품어내는 듯했다. 김칫독을 살피는 일은그저 뚜껑을 열어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마을에서는 초겨울 바람의 흐름,햇빛의 각도,밤의 온도까지 모.. 겨울 밤, 사랑방에서 이어지던 호미자루 갈던 시간들 겨울이 깊어지면 마을의 밤은 낮과 전혀 다른 고요함을 품었다.바람은 집 담장을 따라 낮게 스며들었고, 먼 들판에서 올라오는 냉기는문틈 사이로 서서히 퍼져 실내의 온기를 조금씩 가져갔다. 사랑방 문을 열면 따뜻한 온기와 함께 오래된 나무 냄새가 은근히 섞여 올라왔다.작은 등잔불 하나가 방 안을 환하게 밝히진 못했지만,그 불빛만으로도 밤을 보내기에 충분한 빛이었다. 사랑방 한쪽에는 호미자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겨울 동안 사용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이 계절이 되어야손질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나무 도구였다.나무 손잡이는 오래되어 표면이 매끄럽게 닳아 있었고,작은 균열은 그동안 지나온 계절을 조용히 증명하듯 자리 잡고 있었다. 도구를 손에 쥐면 나무에 남아 있던 겨울의 차가움이손바닥으로 천천히 스며들.. 늦여름 꿀벌 산벌 피하는 날, 벌통 주변 돌보기 풍경 늦여름이 되면 마을의 공기는 한층 무겁게 가라앉곤 했다.볕은 여전히 강했고, 장마 뒤로 남은 습기는 밤까지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이 시기 마당 한켠의 벌통들은 여름 내내 모아 온 꿀 향을 품고 있었고, 꿀벌의 움직임도 점점 분주해졌다.가을을 앞두고 벌집이 무거워지는 이때는 마을 사람들이 늘 조심스레 움직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꿀벌은 여름 끝자락쯤 되면 민감해진다.낯선 냄새나 큰 소리에도 쉽게 방향을 바꾸고, 순간적으로 벌통 밖으로 몰려나오는 산벌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다.그래서 늦여름의 벌통 돌보기는 조용한 손길과 천천히 이어지는 움직임이 가장 중요했다.벌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규칙이었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 마당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벌통 주변은 햇빛을 오래 받아 .. 이전 1 2 3 4 5 ··· 10 다음